간디회의

<부모일기> 아이낳기, 어른되기

작성자
gandhi
작성일
2018-11-15 22:28
조회
1365
<격월간 민들레> 교육잡지 통권 89에 실린 간디학교 이임주 선생님의 글입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님들에게 도움이 되는 글입니다.

 

아이 낳기, 어른 되기 

                                                                                                                                                                                                                                             이임주

짐승 같은 남자, 술초뱅이 여자의 부모 되기

 

이십대 시절, 나는 이렇게 혼란스러운 세상에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참 무책임한 일이라 생각했다. 결혼을 하면서 고민은 더욱 깊어졌다. 내게는 젊은 시절 열정이 고스란히 담긴 삶터이자 일터가 있었고 그 시점에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그것을 포기하거나 잠시 중단하는 일이었다. 그것은 잘 달리던 차가 고속도로에서 끽! 하고 멈춰서는 일과 같았다.

더구나 주변을 둘러봐도 어린아이를 키우며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엄마들은 지치고 힘들어 보였고 육아는 여전히 일방적으로 여자들의 몫이었다. 간혹 엄마 대신 직접 나서서 육아 휴직을 하는 이상적인 아빠들도 있었지만, 그들은 더욱 힘들어 보였다. 아이를 낳고 기른다는 것. 그것은 이 시대에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남편의 직업은 목수다. 몸 속에 테스토스테론이 철철 넘쳐 흘러 온몸이 울퉁불퉁한 근육으로 뒤덮인 남자 중에 상남자였던 남편은 대부분의 남자들이 그러하듯 ‘육아’에 ‘육’자도 몰랐다. 관심조차 없었다. 어린 아이가 가까이 오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고 간혹 옆에 온다 해도 형식적으로 “안녕~” 하고 인사 정도 할 뿐이었다. 

나 또한 어린 아이들에겐 크게 관심이 없었다. 살아가며 가끔씩 엄마가 되면 난 어떤 사람일까? 막연한 생각을 한 적이 있지만 현실적인 엄마의 역할에 대해선 연습을 한 적도, 깊이 생각해본 적도 없다.

잘 나가던 이십대 시절의 나는 자타가 공인하는 음주가무의 독보적 존재였다. 사람들이 ‘임주’라는 내 이름을 두고 ‘음주’라고 부를 정도로 자랑스런 술초뱅이의 역사적 사명을 다하며 살아왔다. 그런 화려한 시절을 보내고 난 후 나는 겉은 멀쩡한 이십대인데 속은 노인이란 소리를 들을 만큼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아이를 가질 몸이 아니었다. 이런 몸 상태로 아이를 가졌다간 술에 취한 아이가 나올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런 무모한 사람들이 부모가 되겠다고 나섰다. 자신이 없었지만 결혼 후 아이를 낳겠다는 결심을 하고부터는 임신, 태교, 육아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남편과 나누고 싶었다. 막연히 오래전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수중분만이 떠올라 남편에게 어떠냐고 물어보았으나 “그렇게 할 필요가 있어?”, “지금 이 시대에 자연스러운 것은 그냥 병원에서 편하게 낳는 거야”라는 깊이 없고 관심 없는 대답뿐이었다. 이 책 저 책 읽으라고 권해줘도 한 장도 들춰보지 않았다. 다툼의 연속이었다. 이렇게 육아에 관심없는 남자와 어떻게 아이를 낳고 살 수 있을까 답답했다.

안되겠다 싶어 나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다. 아직 아이가 생기기 전이었지만 태교를 준비하며 처음 읽었던 책이 서정록의 『잃어버린 지혜, 듣기』였다. 인디언의 태교라는 주제로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첫 부분부터 가슴이 뛰었다. 한 문장 한 문장이 감동이었다.

 

 

인디언 어머니들은 길을 가다가 아름다운 꽃을 보면 

그 꽃의 색깔이며 모양과 향기 등을 태아에게 일일이 설명해준다. 

아름다운 풍광이나 저녁노을을 만나도 아이에게 그 황홀한 모습을 자세히 들려준다. 

또 동물을 만나면 그 동물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고, 

시냇물을 만나면 냇물이 어떻게 노래하며 춤을 추는지 들려준다.

(서정록, 『잃어버린 지혜, 듣기』)

 

책을 읽다 남편이 옆에 있으면 바로 달려가 느낀 것보다 더 격한 감동을 하며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옆에 없으면 문자나 전화로 하나하나 남편과 나누었다. 짐승 같던 한 남자가 조금씩 아빠로 변해가기 시작했던 것은 이 단락을 접하고부터가 아닐까 생각된다.

 

아버지가 태아에게 기여하는 가장 큰 방법은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다. 

태아는 어머니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하는 모든 행위는 

곧 태아에게 하는 것과 같다고 한다. 

임신 중에 어머니가 겪는 경험은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대하는 태도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아버지와의 사이에 존재하는 긍정적인 에너지는 어머니의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목소리를 통해서 

태아에게 고스란히 전달될 것이다. (위의 책)


 

재미있을 것 같았다. 사실 그다지 숭고한 뜻은 없었고 그저 저렇게 해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는 호기심에서 태교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 재미에 젖어 점점 우리 부부가 읽고 나누는 육아서적들이 많아졌다.

예부터 내려오던 태교의 지침서 태교신기(胎敎新記)에 ‘스승 십 년의 가르침이 어미 열 달 배 안의 가르침만 못하니라’라는 글귀는 

육아서적들을 들춰보다보면 자주 인용되는 글이다. 하지만 아이는 뱃속에 있으니 눈에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열 달 내내 좋은 음식을 가려 먹고, 좋은 생각들을 하고, 험한 말을 하지 않고 등등의 태교지침서를 따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임신을 했다고 늘 즐거운 일만 있으리란 법도 없다.

그렇다고 태교에 신경을 쓰지 않기엔 태교를 잘못하여 후회하는 엄마들을 너무 많이 만나왔다. 사춘기인 자식이 힘들어져 상담 요청을 한 부모들은 아이에 대해 이야기하며 후회도 하고 울기도 하며 자연스럽게 아이의 어린 시절, 더 멀리는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 더 멀리는 부모들이 아이를 낳기 전 살아왔던 삶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부모들도 아이의 문제는 자신에게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태교가 첫 단추가 아니었다. 태교 이전에 부모의 마음가짐에 따라 그에 맞는 심성의 아이를 입태하게 된다는 것! 아니, 어쩌면 그 이전에 부모가 살아온 삶이 더 중요한지도 모를 일이었다. 우리 부부는 우리에게 찾아올 귀한 아이를 맞이하기 위한 첫 번째 단계로 백일 간 몸 만들기에 들어갔다. 먹는 것이 나의 몸을 만든다고 바른 먹거리부터 실천했다. 술, 커피, 인스턴트 식품, 육식을 모두 끊고 바른 먹거리로 나의 몸을 건강한 세포들로 다시 채워가기 시작했다. 물론 임신과 출산은 여자들만의 몫이 아니기에 남편도 이 모든 프로젝트에 함께했다. 태교, 육아에 무지하고 수중분만 이야기를 꺼내도 콧방귀도 뀌지 않던 남편은 어느새 함께 가정 분만에 대한 영상도 보고, 산파도 직접 만나보는 적극적인 아빠가 되어 있었다.

 

내 생애 가장 행복했던 열 달

관심이 없었던 임신 육아 책들을 읽어 내려가며 나의 과거가 내내 떠올랐다. 임신 육아 서적은 예비엄마들만의 책인 줄 알고 평소 관심도 갖지 않았는데 모든 사람들이 다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만큼 훌륭한책들이 많았다. 엄마가 되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좋은 정보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나를 인정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책을 보다 엄마에게 전화해서 나의 과거를 묻기도 하고 임신 기간 동안 무얼 했나 묻기도 하며, 엄마와 자주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살아가며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들을 이해하게 되었고 나를 돌아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이 되었다. 자연스럽게 이어진 치유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소중한 아이가 나에게 왔다. 그 기분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또 다른 생명체가 내 뱃속에서 꿈틀대고 있는 느낌, 그것은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벅찬 감동이었다. 나는 책에서 보았던 대로 아이가 뱃속에 있는 열 달 동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아무에게도 방해 받지 않는 고요한 숲길을 걸으며 눈에 보이는 모든 것, 느껴지는 모든 것을 이야기해주었다. 

처음엔 보이지도 않는 아이에게 중얼중얼 이야기한다는 것이 여간 어색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반복하다보니 어느새 누가 있건 없건 혼자 중얼중얼 아이에게 이야기하는 일이 자연스러워졌다. 비가 오면 비 이야기, 눈이 오면 눈 이야기, 봄, 여름, 가을, 겨울, 아이와 함께 거닐었던 그 길이 행복했다. 남편과 손잡고 산책하면서 노래도 부르고,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누고, 즐거우면 아무도 없는 길에서 춤도 추었다.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리면 개구리 이야기, 달 밝으면 달 이야기 등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이야기해주었다.

그리고 목수였던 남편은 밤에 잠들기 전에 꼭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오랫동안 나지막하고 깊은 목소리로 이야기해주었다. 고된 작업으로 몸은 피곤하지만 남편에게도 하루 간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고 아이와 나누는 일들이 스스로에게 치유의 시간이었으리라. 아이는 듣기만 하는 존재였고, 살아오면서 그렇게 자기 삶의 긴 이야기들을 풀어놓은 적이 없었을테니. 아마 아이는 뱃속에서 목수 아빠 덕에 집을 몇 채는 지었을 것이다. 급기야 이야기 소재가 다 떨어져 성경 이야기부터 부처님 이야기까지, 남편은 참 성실히도 아이에게 세상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덕분에 나도 늘 이야기를 들으며 잠이 들었다. 만삭이 되기 전까지 108배와 요가를 하며 마음을 단정히 하였고, 10시 전에 꼭 잠을 청했다. 음악을 좋아하는 남편 덕분에 시디나 엠피스리 기계음이 아닌 엘피판으로 늘 음악을 들려주었다. 

그동안 놓고 있었던 악기도 다시 시작했다. 행복하게 지내서인지 아이가 기운이 좋은 아이여서인지 몰라도 내 인생에서 가장 몸이 가볍고 건강했던 날들이었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퍼마시던 술 생각은 하나도 나지 않았다.

 

출산, 그 경이로움에 대하여

그렇게 시간은 흘러 예정일이 가까워왔다. 아이가 여러 사람들에게 축복받으며 태어났으면 해서 예정일과 가까운 정확한 날짜를 늘 아기에게 이야기해줬다. 산파가 말하길 뱃속에 아이는 못 알아듣는 것 같지만 영적인 존재여서, 부모가 원하는 날짜를 잡아 자주 이야기를 해주면 열에아홉은 그날에 나온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믿고 우리도 그리 하였으나 정작 그 날짜가 되었는데도 아이는 나올 생각이 없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먼 곳에 있는 동생을 아이 핑계 삼아 불러들였고, 집 주변에 자란 풀들이 맘에 걸려 ‘우리 아기가 나올 수 있는데 집도 단정히 해야지’ 하며 만삭의 몸으로 쪼그려 앉아 풀을 정리했다. 저녁이 되어 풀벌레 소리 들으며 도란도란 놀고 있는데 신기하게도 사르르 배가 아파왔다.

산파가 오지 않은 상태여서 배 아픈 산모 빼곤 모두 초긴장 상태였다. 걷기도 하고, 물속에 들어가기도 하고, 변기에 앉아 있기도 하며 자유로운 자세로 산파를 기다렸다. 나중엔 물속에 있는 것이 그나마 아픔이 덜해 물속에 들어가 있는데 뭔가 불쑥 나오는 느낌이 들었다. 당황한 남편은 나를 안아서 아이를 낳으려고 준비해놓은 곳에 눕혔다.

그리곤 3초도 안 되어 뭔가 철퍼덕 하며 쏟아져 나왔고 난 본능적으로‘이제 힘을 빼야지. 우리 아기에게 스스로 나올 기회를 주는 거야’ 생각하며 온 몸에 힘을 뺐다. 너무! 정말! 몹시! 어떤 말로도 표현될 수 없을만큼 아팠기에 긴장한 몸을 갑자기 이완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었지만 임신 기간 내내 아이에게 스스로 나올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것에 큰 가치를 두었기에 어쩌면 자연스럽게 몸이 선택한 일일지도 모르겠다.(나중에 남편과 동생에게 들은 거지만, 정말 신기하게도 엄마는 전혀 힘을 주지 않고 있는데 머리가 나온 후 아기가 스스로 몸을 돌리며 뱅그르르 나왔다고 한다.)

남편은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아기를 조심스레 들어 내 가슴 위에 올려주었다. 아기와 내가 연결된 탯줄은 터질 것 같이 탱글탱글 쿵쿵 뛰었고,우린 탯줄이 사명을 다할 때까지 자르지 않고 기다려주었다.(산소와 양분이 공급되던 탯줄을 곧바로 자르면 아기들이 갑자기 폐로 호흡하며 큰 충격을 받는다고 한다.) 르봐이에의 말처럼 평화롭게 태어난 아기는 울지 않았고, 가슴 위에서 엄마 심장소리를 들으며 꼬물거렸다. 아기 시력 보호를 위해 촛불만 켜두고 우린 미리 준비한 노래를 불러주었다. 그리고 아빠는 아기를 축복하는 편지를 읊어주었고, 아기는 여러 사람들의 축복을 받으며 엄마 젖을 물었다. 이제 지구별에서의 삶이 시작된 것이다! 남편이 십여 분이 지나 흐늘흐늘해진 탯줄을 불에 소독한 가위로 조심스레 잘랐다. 이내 아기를 감싸고 있던 태반도 나왔다. 태반은 미리 심어 두었던 아기나무 밑에 잘 묻어주었고, 동네 어르신은 손수 새끼줄을 꼬아 고추와 숯을 달아주셨다.

월악산 자락 공기 좋은 곳에서 태어난 아기는 건강히 잘 자랐다. 흔히 예방접종이라 불리는 백신접종도 하지 않았다. 굳이 무서운 부작용까지 감수해가며 아직 안전성이 보장되지 않은 유전자 조작 화학약품을 아이 몸속에 넣을 필요가 없어서였다. 자연스럽게 엄마 젖을 빨았고 그렇게 태어나 삼 년 간 엄마 품에서 참 잘 자랐다.

 

특별한 사람들의 육아법?

어느새 나는 태교에서부터 가정분만까지 보통 사람들과 다른, 특별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집에서 낳던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던 옛 시절엔 병원에서 낳는 산모가 특별해 보이고 여유 있어 보였겠지만 이제 상황은 달라졌다. 병원에서 출산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요즘 가정분만을 한다고 하면 대단하고 특별한 사람으로 여긴다. 

하지만 나로선 크게 어려운 선택은 아니었다. 병원 말고도 가정분만이라는 선택의 여지가 하나 더 있었고 나에게 더 이익이 되는 쪽을 선택한 것뿐이다. 다 낳고 나서야 말이지만 실은 산파도 없이 진통을 겪으며 병원 가고 싶다는 생각을 얼마나 했는지 모르겠다. 차라리 병원에 가면 조금 덜 아프진 않을까, 덜 힘들지 않을까, 더 빨리 낳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가정분만을 준비하다 결국 용기가 없어 병원에서 아기를 낳은 동생을 지켜보며 나의 판단이 옳았음을 확신했다. 동생은 병원에 가서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링거를 맞는 순간부터 병원에 의지해야 한다는 무력감이 들었다고 했다. 옆에서 지켜보니 병원에서는 오로지 아이를 빨리 나오게 해야 한다는 생각만으로 질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수시로 확인하고, 급기야 양수를 터트리기까지 하니 그 과정에서 동생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자연분만이지만 제왕절개와 다른 인공분만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간혹 사람들은 “태교든 가정분만이든, 3년을 엄마가 집에서 육아를하는 것이든, 모두 여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냐?”고 묻는다. 사람들이 말하는 그 여유는 ‘돈’일 수도 있겠고 계속 이어가고 싶은 자신의 ‘직업’ 또는 ‘꿈’과 관련된 것일 수도 있겠다. 그런 잣대로 치자면 난 정말 여유가 없는 사람이었다. 돈도 없었고, 내 젊은 날이 고스란히 담긴 오랜 직장도 포기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나는 3년 육아를 결심하며 큰 고민 없이 전세에서 월세로 집을 옮겼다. 경제적 가치보다는 아이와 함께하는 것에 더 큰 가치를 두었기 때문이다.

 

배움의 첫 시작, 나를 인정하는 일

대안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늘 주장하던 것이 있었다. 그 사실에는 예외가 없었고 당연하다 생각했다. 부모님들에게 내 자식만 잘 키우려 하지 말고 모두 우리 아이라 생각하고 함께 키우고 교육하자고, 늘 말해왔다. 자기 새끼만 잘났다고 생각하는 이기적인 부모들을 보면 화가 났었다. 

그런데 자식을 낳아보니 정말 내 자식만 보였다. 백 명, 천 명, 만 명이 모여 있다 해도 내 자식만 밝은 빛으로 빛나 보일 정도였다. 뭐라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예쁘고 사랑스러웠다. 객관성을 갖기란 참 어려운 일이었다. 우리 아이가 다른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밀거나 하면 속으론, ‘상대방 아이가 잘못했으니 우리 아이가 저렇게까지 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속으로는 그러면서 체면이 있으니 내 자식을 야단쳤다. 울고 떼쓰는 등 같은 행동을 해도 내 자식은 이유가 있는 것이고 남의 자식은 ‘왜 저럴까?’ 하고 생각했다.

듣기 좋은 말들을 모두 알고는 있지만 직접 실천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모두 내 자식이라 생각하고 함께 교육해야 한다는 것도 다 아는 사실이지만, 그렇지 않은 나의 모습을 인정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무엇이든 진정한 배움의 첫 시작은 나를 인정하는 일이다. 우리는 단 한순간도 혼자서는 존재할 수 없다. 내 아이만 잘 되고 사회는 엉망이라면 내 아이가 잘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내 아이만 위한다는 생각은 결국 큰 관점에서 보면 손해인 것이다. 자식을 통해 나의 모습을 솔직히 바라보고 인정하는 일은 참 어려운 일이지만 우리는 그래야만 진정한 배움터로 한걸음 나아갈 수 있다.

사실 조금 더 솔직해지자면 처음에 우리 부부가 남다른 태교나 가정분만을 계획했던 것은 다들 힘들다는 육아를 좀 쉽게 해보고 싶다는 속내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 속의 육아는 여전히 힘들었고, 내 아이가 그리 특별하고 대단한 아이도 아니었다. 태교는 모든 것의 해결책이 아니라 최선의 선택일 뿐이다. 훌륭한 아이가 태어났으면 하는 기대나 바람보다, 스스로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한 인간적인 노력이 태교의 첫 시작인 것이다. 이것이 아이 앞에 좀 더 당당히 설수 있는 부모의 자세가 아닐까 생각한다.

나 또한 부족함이 많고 준비되지 않은 엄마였지만, 남편과의 갈등에서부터 시작한 태교, 가정분만까지 우여곡절 끝에 지금은 아이 앞에 당당한 엄마이자, 이전보다 조금 더 성숙한 한 인간으로 성장해가고 있다. 그리고 육아에 무지하던 남자, 나의 남편도 어느새 중요한 순간 나를 잡아주는 버팀목이 되었다. 산파가 오지 않아 언제 아이가 나오는지도 모르고 너무 아프기만 했던 마지막 순간, 고통을 참지 못하고 병원에 가고 싶다고 했을 때 끝까지 격려하며 손을 잡아주던 남편이 있어 평화로운 출산으로 이어질 수 있었고, 예방접종에 대한 책을 서너 권 읽고 또 읽었음에도 아이 앞에서 흔들리던 나를 잡아준 사람도 남편이었다. 

우리는 아이를 통해 평생 함께 해도 즐거운 공동의 목표.한 아이의 삶에 등대가 되어 주는 일.가 생겼다. 우리 인생에서는 짧은 3년이었지만 우리 부부가 평생 자랑거리로 삼아도 모자랄 만큼의 위대한 일들을 함께 해냈다는 의미에서 인생의 진정한 동반자가 되었다. 더불어 아이를 통해 끊임없이 스스로를 비추고 배우며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깨달으면서 우리는 참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아이는 젖을 뗄 때도 미리 약속한 날짜에 젖을 먹지 않아 엄마를 당황스럽게 했고, 배변을 가리는 일도 그랬다. 우리는 믿음이 생겼다. 아이가 뱃속에서 나올 때 스스로 몸을 돌리며 나온 것처럼 아이를 믿고 기다리면 스스로 자신의 걸음에 맞추어 성장한다는 것을. 다만 부모가 할 일은 친절하고 또 친절하게 지켜봐주며, 점점 성장해가는 아이를 조금씩 놓아주는 일이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우리처럼 준비되지 않은 채 부모가 되겠지만, 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부모의 삶도 아이의 삶도 달라진다. 작은 호기심과 즐거운 상상으로 쉽고 자연스럽게 시작하다보면 어느새 그 상상이 현실이 되어 있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