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디회의

자식은 부모의 증상이다.

작성자
gandhi
작성일
2018-11-13 16:10
조회
1221
'자식은 부모의 증상이다.' 라는 말이 한편으로 부담스럽기도 , 한편으로 공감이 되는 말이다.

아래의 칼럼처럼 화나 신경질을 내지 않고 아이를 키우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할 수도 있다.

또 마치 화내는 부모를 죄인취급하는 불편함이 있을 수도 있겠다.

십여년의 시간을 교사로 지내오면서 수많은 아이들을 만나왔다.

처음에는 아이들의 긍정적 변화를 보며, 행복하기도 하였으나 짧은 시간 동안 한 인간이 변화되기를 바라는 것은

나의 자만이었다.

아이들이  바뀌기를 바라는 순간 기대하고 실망하고, 지치는 일들의 반복이라는 것을 알아차렸을 무렵,

그저 교사들은 그 자리에서  '할뿐', 아이들마다 그것을 싹틔우는 시기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서른이 되어, 마흔이되어, 또는 죽을 날이 가까워져 어딘가에 심겨져 있을 그 씨앗은 그냥 있을 수도 싹을 틔워

자신도 모르게 성장해 갈수도 있겠다. 그것뿐이었다. 그것이 교사로서 아이들을 긴 호흡으로 만날 수 있는 첫 자세였다.

학교에서 주는 긍정적인 교육적 환경도 아이들의 성장에 영향을 끼치겠지만,

부모의 생애와 삶의 형태는 아이들에게 고스라니 반영되고 있음은 분명했다.

내아이만 잘 되기를 바라는 이기적인 부모의 자세는 변화되었던 아이들마저 제자리 걸음으로 만들었다.

힘빠지는 일이었다.  인정하기 싫지만, 그런 부모의 자세를 아이는 고스라니 닮아 있었다.

"결국 내 아이만 지켜서는 내 아이를 지킬 수 없다."

성인군자가 아닌 이상 우리는 화도 나고, 신경질도 난다.

하지만, 적어도 그것이 아이들을 향한 사랑인지 그저 힘없는 아이들을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대하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를 점검해보고 반성해 보아야한다.

그것은 아이들의 놀이 속에서, 아이들의 일상 속에서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이들의 삶이 되기 때문이다.
< 자식은 부모의 증상이다. >
“모든 정신분석가는 자신의 내담자를 가장 훌륭한 부모로 만들려고 한다. 왜냐하면 분석가 자신이 훌륭한 부모를 가져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오래전, 필자가 분석을 받을 때 나의 분석가가 세션 중에 한 말이다. 반박할 도리가 없는 말이었다. 나 또한 훌륭한 부모를 가져본 적이 없다.

나 같은 그저 그런 분석가뿐 아니라, 카운슬링(Counseling)이라는 단어를 창안해낸 인본주의 심리학의 창시자 칼 로저스도 그랬던 것 같다. 심리학자로서 큰 업적을 이룬 그가 말년의 한 인터뷰에서 ‘당신의 어머니가 지금 당신의 이론과 업적을 알게 된다면 뭐라고 하실까요?’라고 물은 기자에게 “그 사람은 들으려 하지도 않을걸요”라고 답했다 한다.(그래서 로저스가 경청을 그리도 중요하게 강조했나 보다)

엥겔스가 마르크스의 고향을 지나다가 그의 집에 들러 어머니에게 인사드리고 당신의 아들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써서 크게 성공했다고 하자, 마르크스의 어머니는 “제 자본이나 잘 돌보지”라고 비아냥댔다는 것과 흡사하다.

하지만 내담자를 모두 훌륭한 부모로 만들려 하는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상담자들과 마찬가지로 내담자들 역시 훌륭한 부모를 가져본 적이 없다. 부모로부터 상처받은 자식들이 그런 동일한 부모로 위치 이동하는 경우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가족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고, 그 연쇄를 깨트려 훌륭한 부모로 성숙할 수 있도록 함께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이것은 상담자와 내담자로만 국한할 일이 아니다. 내가 보기에는 이 논의에서 자유로운 부모와 자식은 세상에 하나도 없을 것 같다. 훌륭은 고사하고 부모의 어떤 행위와 태도 때문에 평생의 고통을 적어도 하나씩 감당하며 사는 자식이 대부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정신분석가, 상담사들만큼 이런 부모의 독선과 폭력, 만행과 무지함에 대한 이야기를 직업으로 듣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훌륭한 부모란 어떤 부모일까?’라는 의문을 수도 없이 자문하고 또 질문받기도 했다. 질문의 장대함에 견줘 대답은 옹색해 보일지 모르지만 필자는 이에 대한 몇가지 답이 있다. 그중 하나는 이것이다. 신경질(짜증, 화) 내지 않는 부모다. 자녀를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여기고 온갖 악감정을 쏟아내는 어머니, 자신의 좌절과 열등감을 자녀를 폭행함으로 푸는 아버지의 얘기는 인류의 고전이다.

아버지를 고발한 글로 유명한 카프카의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를 보면 그는 아버지의 무지와 무례함, 무식과 우악스러움에 진절머리를 쳤었다. 하지만 결국 그가 아버지에게 가장 상처받고 평생 ‘변신’의 환상으로 숨어든 이유는 아버지의 화와 신경질에 영혼이 화상을 입었기 때문인 것 같다.

세상에는 대표적인 거짓말이 몇가지 있다. “세상에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는 없다”라는 말도 그런 거짓말 가운데 하나인 것 같다. 그렇게 사랑한다면서 왜 화와 짜증은 아이들에게 다 부리는가. 밖에 나가서는 좋은 인간인 척은 다 하면서! 사랑한다면, 행여 사랑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자식들에게 신경질, 짜증, 화는 가급적 내지 말자. 당신의 자식들이 카프카처럼 영혼에 화상을 입을 수도 있다. 아들러가 말했다, 격려하기의 절반은 좌절을 방지하는 데 있다고. 좋은 부모 되기의 절반은 신경질 부리지 않음으로 완성될 수 있다. 모든 신경증은 대물림된다. 자식은 부모의 증상이다!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